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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인생길과 경전

한국에서 주된 불교 종단은 조계종이며 선종을 기반으로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간화선을 선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출가 전에 좌선에 관심을 가졌는데 20대에 필자 생각으로는 화두를 들고 좌선을 하는 것이 더 적극적이며 이가 깨달음의 지름길인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좌선할 때 한동안 화두를 들고 선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지 노력보다 안정이 잘 안 되었고, 선에 집중도 또한 떨어졌습니다. 어느 날 원불교 경전을 읽고 저의 선법을 바꾸었고 그 후 좌선이 잘 되었습니다. 다음은 필자가 읽은 경전 구절입니다.   간화선은 사람을 따라 임시방편은 될지언정 일반적으로 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니, 만일 화두(話頭)만 오래  계속하면 기운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잘 얻지 못 하나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좌선하는 시간과 의두 연마하는 시간을 각각 정하고, 선을 할 때는 선을 하고 연구를 할 때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나니, 이처럼 하면 공적(空寂)에 빠지지도 아니하고 분별에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능히 동정 없는 진여성(眞如性)을 체득할 수 있느니라.(원불교 정전)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근래에 선종 각파에서 선의 방법을 가지고 서로 시비를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가운데 단전주(丹田住)법을 취하여 수양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수양만 하고 화두 연마는 적당한 기회에 가끔 한 번씩 하라 하노니, 의두 깨치는 방법이 침울한 생각으로 오래 생각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명랑한 정신으로 기틀을 따라 연마하는 것이 그 힘이 도리어 더 우월한 까닭이니라.” (원불교 대종경 수행품 14)   경전이 마음공부의 방향을 가르쳐주기에 많은 불교 종단에 있어서 처음 출가한 승려들은 본격적으로 선방에서 참선 공부를 하기 전 최소한 몇 년 경전공부를 해야 합니다.     중국에 현장 스님(AD 602~664)은 10대 초에 출가하여 경전공부와 수행에 매진했습니다. 경전공부를 하면서 중국어로 번역된 불교 경전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종종 있었습니다. 실제 부처님께서 무슨 말씀을 정확히 하셨는지를 알기 위해 원전 즉 팔리어와 산스크리트로 된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자 현장 스님은 29세에 중국을 떠나 인도로 향합니다. 걸어서 가는 여정이었고 고비사막을 지나고,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으로 가서 히말라야 산맥을 지나야 하는 참으로 길고 길 여정입니다. 당나라 수도 장안을 떠나 불교 수행과 연구의 요람인 인도 나란다 사원에 도착하는 데 6년이 걸렸습니다. 이곳에서 팔리어, 산스크리트로 된 부처님 경전을 5년간 공부하고, 다시 많은 불경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7년이 다시 소요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중국 등에서 이러한 순례 여행을 떠난 스님들이 많았습니다. 태반의 순례자들은 여행 도중 사망했습니다. 신라 시대 한국에서 인도로 순례 간 혜초스님은 고비사막을 헤매다가 사람들의 뼈가 바람이 불어서 모래에 드러나면 이 길은 아마 과거 순례객이 걸어온 길이라고 생각하고 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고 합니다. 다음은 인도로 가는 순례길에서 혜초스님이 지은 시의 일부입니다. “다람쥐와 새들도 살기 어려워 하는 히말라야 산, 난 지금 이길을 걷고 있구나.”   박물관에서 양피지로 된 두꺼운 성경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성경을 사기도 힘들었고 아주 비쌌을 것입니다. 태반의 사람들이 글도 읽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경전을 구할 수도 있고 경전을 쉽게 읽을 수 읽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살고 있습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이여! 시대가 비록 천만 번 순환하나 이 같은 기회 만나기가 어렵거늘 그대들은 다행히 만났으며, 허다한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드물거늘 그대들은 다행히 이 기회를 알아서 처음 회상의 창립조가 되었나니, 그대들은 오늘에 있어서 아직 증명하지 못할 나의 말일지라도 허무하다 생각하지 말고, 모든 지도에 의하여 차차 지내가면 멀지 않은 장래에 가히 그 실지를 보게 되리라.”(수행 15)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인생길 경전 원불교 경전 부처님 경전 원불교 창시자

2024-03-14

[삶과 믿음] 마음공부와 훈련

중세 시대 한 화가가 예수님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자기 마을에서 가장 선하고 정직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 그를 모델로 예수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몇 년 뒤 그 화가는 예수님을 판 유다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자기 동네에서 가장 악하고 간사하게 보이는 사람을 찾다가 결국 감옥에서 모델을 찾기로 했습니다. 항상 분노에 가득 차 있고 악해 보이는 한 죄수를 발견했고, 그가 유다 모델로서 적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려고 그 죄수를 보니 그가 아주 눈에 익은 사람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죄수는 자기가 수년 전 예수님을 모델로 그린 그 청년이었습니다. 그 청년이 어떤 환경 속에서 방탕의 길을 걷다가 중죄로 감옥으로 들어오게 되어, 그의 얼굴과 인생이 그렇게 변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쓰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예수님같이 되기도 혹은 유다 같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 26:41) 예수님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잘 쓰려고 해도, 마음이 잘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마음을 잘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공부는 선, 명상 등의 ‘훈련’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훈련(訓練)에서 훈(訓)이란 ‘가르칠 훈’, ‘훈습 할 훈’입니다. ‘훈습’의 사전적 정의는 ‘열심히 노력하여 숙달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좌선을 매일 하는 것, 경전을 정기적으로 봉독하고 연마하는 것 등 우리가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열심히 ‘실행’ 노력을 해서 이가 우리의 생활 습관이 되게 우리 인생을 숙달시켜야 합니다. 이는 ‘스스로’ 가르치고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訓練)에서 련(練)이란‘익힐 연’,‘단련할 연’입니다. 한자 련(練)의 본래 의미는 ‘쇠 불릴 연’입니다. 용광로에서 쇠를 불에 달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기도와 명상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 등이 처음에는 재미있지 않습니다. 쉽고 재미있지는 않지만 일단 반복하여 습관이 되면 그 유익이 한량없습니다. 재미있지는 않지만 반복적으로가치 있는 일과 행동을 하면, 즉 ‘훈련’을 하면, 쇠가 용광로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처음에는 어려울지 몰라도, 나중에는 우리 삶이 정금같이 되어 한량없이 발전되고 수준이 올라갑니다. 우리 인생의 여러 고통과 경계를 당할 때, 내 인생의 쇠가 최고의 품질로 거듭나기 위해 이 용광로를 통과한다고 생각하시고, 신앙 수행인들은 어려운 경계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원불교 초창기 한 제자가 식당 고역에 힘들어 하는 것을 보시고,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다음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일이 고되어 얼굴이 빠짐이로다. 너희들이 이 공부 이 사업을 하기 위하여 혹은 공장 혹은 식당 등에서 모든 괴로움을 참아 가며 힘에 과한 일을 하는 것은 비하건대 모든 쇠를 풀무 화로에 집어넣고 달구고 또 달구며 때리고 또 때려서 잡철은 다 떨어버리고 좋은 쇠를 만들어 세상에 필요한 기구를 제조함과 같나니, 너희들이 그러한 괴로운 경계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며 삼대력을 얻어 나가야 범부의 잡철이 떨어지고 정금(精金) 같은 불보살을 이룰 것이라, 그러므로 저 풀무 화로가 아니면 능히 좋은 쇠를 이뤄내지 못할 것이요, 모든 괴로운 경계의 단련이 아니면 능히 뛰어난 인격을 이루지 못하리니, 너희는 이  뜻을 알아서 항상 안심과 즐거움으로 생활해 가라.”     훈련,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 과거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이 처자를 버리고 왕궁을 떠나서 산에서 구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조용한 시간, 충전의 시간을 위해 혼자 있거나, 산에 가거나, 이런 훈련에 참석하는 것도 주요하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현실 가운데 사실적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事實) 즉 일(事)과 현실(實) 가운데서 훈련을 해야 하고, 이가 바로 실지공부며, 이러한 신앙과 수행이 우리의 현실 삶을 바로 향상해 줍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마음공부 훈련 유다 모델 원불교 초창기 원불교 창시자

2022-11-17

[삶과 믿음] 정신수양의 필요

탁월한 수학자, 철학자들의 머리는 비싸고 성능 좋은 스포츠카와 같습니다. 스포츠카에 브레이크가 없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차는 반드시 사고가 납니다. 수양 없는 현대인이 불안증, 강박증 등을 가지는 근원은 정신을 잘 쉬지 못하는 생활 습관에 기인하며, 이 같은 인생은  브레이크 없는 차를 모는 것과 같습니다. 쉬임 없는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차 사고가 원불교 경전에는 다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결국은 가패 신망도 하며, 번민 망상과 분심 초려로 자포자기의 염세증도 나며, 혹은 신경 쇠약자도 되며, 혹은 실진자도 되며, 혹은 극도에 들어가 자살하는 사람까지도 있게 되나니….”   어떤 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현대인들의 수많은 근심과 염려 중 40%는 실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며, 30% 정도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실책 등 생각해도 소용없는 것이며, 20%는 아주 하찮은 것이며, 4% 정도는 날씨, 경제 상황 등 우리가 컨트롤하기 힘든 것에 관한 염려라고 합니다.    시험을 치기 전 긴장, 염려를 안 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우리 마음이 바로 그렇게 되나요? 그 사람 이제 용서하고 미워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고 우리 마음이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이제는 비교 안 하고 마음 편안히 살겠다고 생각해도 우리 마음이 바로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신수양으로 마음의 ‘힘’을 길러야 우리 마음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정신은 쉬면 쉴수록 그 힘이 강해집니다. 정신을 멈추어서 잘 쉬게 하고 그 힘을 양성하는 방법이 바로 기도, 좌선, 명상입니다. 이 방법은 마음에 힘을 불어넣는 길이며,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 “예로부터 큰 도에 뜻을 둔 사람으로서 선(禪)을 닦지 아니한 일이 없느니라” 하시며 선과 명상의 주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조선 시대 서화담 선생이 어느 날 불교 선방에 가보니 좌선을 하는 스님이 거의 없는 것을 보시고 앞으로 백 년 후에 한국에 명재상, 명장군이 나오지 않겠다고 하고 한탄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염불, 좌선 등의 명상은 우리에게 마음의 힘을 길러 줄뿐더러 그것을 통해 우리는 큰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원불교 3대 종법사였던 대산 종사님께서 “발로도 하는 수양, 눈과 코로 하는 수양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수양을 ‘반달, 반개’로 비유하셨습니다. 보름달보다 반달이 좋고 활짝 핀 꽃보다 반쯤 핀 꽃이 더 좋다는 이 말은 수행인들의 중도(中道) 생활을 말합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보고 듣는 것을 가능한 한 자제하며 육근문(六根門) 즉 우리의 몸과 마음 특히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잘 조절하라는 말씀입니다.   수양의 힘이 약하면 외부 경계가 올 때, 작고 약한 나무처럼 바람에 금방 꺾입니다. 수양으로서 우리 마음의 힘이 강해지면 심한 경계와 어려움 즉 태풍이 와도 우리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수양으로서 우리 마음이 차차 강해지고 성장하는 것을 대산 종사님께서는 얼음 강도에 비유하셨습니다.   “멈추긴 멈추는데 훌렁훌렁하다 꺼진다. 내가 다시 한번 말할 테니까 생각해 보자. 살얼음 같은 수양력인가? 강얼음 같은 수양력인가? 강얼음은 석 달은 가지 한강은 석 달이면 풀리는가? 단단은 하나 그래도 여름이 되면 바그르 한다. 셋째는 철석같은 수양력인가? 쇠와 돌 같은 수양력 그것도 천년만년이 되면 용해되고 분해되어서 없어진다고 그런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얻으신 대 정력이 수양력이란 것은 녹으면 다 사하기 때문에 억만년을 가더라도 그 수양력은 없어지지 않는단 말이다. 한번은 물어봐라. 지금 너 수양이 어느 정도인가? 우리 교학과 학생들 하루에 몇 번을 멈추는가? 열번입니다. 교도에게 물어봐라. 40번입니다. 계속해서 천만 경계를 당할 때마다 멈추고 또 멈추면 그것이 쌓이고 싸여 정력이 된다. 또 금년도 신년 법문에 고질적인 몹쓸 습관 하나씩을 떼자 했지! 실행하는 분 있으면 실행하려고 애쓰는 분 있는가? 물어봐라. 그리고 수양을 할 것 같으면 간단히 무엇을 하자는 것이며 무엇을 모으자는 것인가?”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정신수양 수양력 그것 우리 마음 원불교 창시자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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